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낮공 :: 최호중 박정원 최대훈 송유택 유제윤 윤동현 최주리 :: 내 여신님은 어디 갔나 관람등급 만 11세 이상 관람시간 110분 일시 :: 2015년 08월 29일 15시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좌석 :: 1층 14열 제작진 :: 작/작사 한정석 작곡 이선영 연출 박소영 음악감독 양주인 캐스트 :: 한영범 최호중 류순호 박정원 이창섭 최대훈 신석구 송유택 변주화 유제윤 조동현 윤동현 여신 최주리 |
01-1 뮤지컬은 종합예술이다. 아무리 좋은 극본, 넘버가 있어도 그 극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연출과 스태프진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극을 무대 위에 표현해내는 배우와 무대를 사랑하는 관객이 아니라면 완성될 수 없다. 재연 때부터 연출에 대한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대학로에 몇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고, 힐링과 의미를 줄 수 있는 창작극이었다.
하지만 2015년 사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이하 여보셔)>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잃어버렸다. 연출, 배우, 그리고 관객. 관객에겐 죄가 없다. 초연, 재연에 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삼연이었지만, 극 중반에는 또 다른 마니아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입소문을 타고, 피켓팅의 고통과 함께 역시 여보셔는 여보셔라는 말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연 여보셔에 와서는 재연, 삼연에서 쩍쩍 금이 갔던 틈으로 물이 고여 들어, 결국 그 틈을 드러냈다.
내 기준에선 극 중반이 다 되도록 배우 한 명이 노선을 못 잡고 헤맨다면 그건 그 배우 탓이 크다. 하지만 새로 투입된 배우들이 노선을 못 잡고 헤맨다면, 더불어 지난 시즌 호평받았던 배우들의 감정이 과잉된다면 그건 연출 탓이 크다고 본다. 그렇게 인물 각각이 극 중반이 다 되도록 노선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 여보셔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인물 개개인의 스토리가 묻히고, 그로 인해 인물들이 하나 되는 순간의 쫀쫀함도 약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여보셔는 적어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증오와 살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각자의 완벽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폭력, 살인도 불사하던 보통 사람들이 타인이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각자의 행복과 거리를 한 발짝 발을 떼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었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전쟁과는 떨어진 외딴 섬에서 이름 모르는 적이 아닌, 한영범, 이창섭, 류순호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알아가면서 타인이 아닌 우리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오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의 가치.
그러나 이번 사연 여보셔에는 그 한 발짝 발을 떼는 과정이 딱 텍스트적인 면에서 멈춰있었다. 전쟁과는 동떨어진 섬 안에서 서로 웃고, 함께 하고, 장난칠 수는 있지만 가슴 깊게 깔린 행복에 대한 이기심과 삭막함은 조금도 녹지 않았다. 여보셔의 갈등의 핵심은 그래선 안된다는 마음과 그래야만 한다는 상황의 부딪힘에 있어야 하지만, 사연 여보셔는 그저 상황에 휩쓸려 가면을 쓰고 있고 그 가면이 벗겨진 마지막에 마음으로의 이해와 화합이 아닌, 현실과 타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전처럼 그들을 통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펑펑 울지 못했다.
01-2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공연을 보고 온 그날, 소영 연출 트위터에 여보셔를 잠시 쉬자는 말이 오가고 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 사연 여보셔를 관객들이 외면한 이유가 여보셔가 가진 진짜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자주 올라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02-1 류순호, 순호는 보이지 않는 여신님과 군인들의 매개체였다. 그는 외딴 섬에 떨어진 여섯 명의 군인 중에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이였다. 그들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공간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유일한 군인, 하지만 더 이상 소중한 사람도, 소중한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소년.
그중에서도 정원순호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순호들 중에서도 완전한 이방인이었고 「원 투 쓰리 포 Rep」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며, 굽힌 무릎을 피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성인이라기보다는 폭력에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어린 아이에 가까웠다. 머리 굴리는 게 훤히 보였던 삼연 순호들과 달리 정원순호는 전쟁의 무자비한 공포에 질린 새하얀 기억 위에, 영범의 목소리가 들려준 여신님과 행복한 세상을 덧칠해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용기를 내지 못 했던 건, 그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정성껏 칠한 행복한 세상 위에 그들이 현실이라는 악몽을 부어 그를 "절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02-2 여보셔 삼연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려욱순호를 제외하고 노래 잘하는 순호가 없었다. 다만 연기로 노래의 부족한 점을 메꾸는 순호만 있었을 뿐. 이번 사연 거지순호를 통해 고음이 쓰릴 하지 않는 「악몽에게 빌어」란 이런 것이다,를 처음 접하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노래 잘하는 순호라니……. (재균순호와 성우순호는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03 호중시가 무대가 아닌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일할 때만 해도, 무대에서 호중시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지인들 말을 들으면서 기대했었는데 기대를 충족시키는 건 목소리뿐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절망하며 돌아왔다. 내 여보셔라는 극을 보면서 아빠(극 중 영범의 딸 이름이 진희)를 외면하는 사태가 다시 한 번 발생할 줄이야.
과거 여보셔 호중시 회차를 본 이들의 말에 따르면 호중시 노선이 사연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달라진 노선 속 호중영범은 너무 차갑고 이기적이라, 끝나는 순간까지 영범의 마음속에 있는 벽이 조금도 허물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거친 총소리에도 모두가 하나 되어 발걸음을 옮기는 「원 투 쓰리 포 Rep」에서는 남한군과 인민군 사이에 완전히 닫히지 못 했던 마음속 틈이 꽉 다물어지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에서 영범과 석구가 한국군 비행기가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은,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창섭, 주화, 동현, 순호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식사를 마치고 창섭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잠을 청하는 그의 태도가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
04 작년에 비해 대훈창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내면 안에 잠재해있던 폭력성이 선을 넘는다는 느낌을 들었다. 아니면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상대 배우들이 그의 폭력성을 눌러주지 못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비등비등한 덩치면서도 소년 같은 얼굴로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바라보던 재균순호, 그의 앞을 막아서던 성일주화, 이 모든 걸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형균영범, 셋이 붙었을 때 정말 좋았었는데.
……하고 새삼 작년 후기를 복습하니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벌써 일 년 하고 두 달이 지났구나.
05 내 안에 지숙여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주리여신 정말 예쁘고, 정말 노래도 잘하는데 석구 누나, 주화 동생, 창섭 어머니가 아니라 석구 누나인 여신님, 주화 동생인 여신님, 창섭 어머니인 여신님, 바탕이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평타를 치니 전처럼 와 닿는 건 없었다. 특히 창섭에피에서 지숙여신이나 미영여신의 경우 창섭이 "어찌 나를 그리 키우셨소." 하고 원망 베인 말을 뱉으면, 잠시 할 말을 잃다 나지막하지만 강단 있게 다른 사람 다 죽어도 너 살라, 그랬다고 하는 부분이 창섭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주리여신은 말 그대로 아들을 걱정하는 전형적인 어머니 느낌은 있어도, 창섭 어머니라는 연결고리가 없어 아쉬웠다.
06 읽다보니 까고 까고 깐기만 했지만, 애정극에 이런 후기를 남길 수 밖에 없는 내 마음을 찢어지는 것 같다. 작년 나를 힐링했던 여보셔는 어디로 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