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담긴 작품,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연말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해를 맞이하는데 있어 의미를 부여하는 따스한 작품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는 출퇴근 속에서 일상을 보내며 조금은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공무원 듀티율에게 벽을 드나들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그의 삶은 변화를 꾀하게 된다.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의기양양한 뚜네뚜네가 등장해 국민들의 영웅으로 칭송 받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으니 말이다. 장미에 물을 주며 사는 것이 낙이었던 남자에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마법의 능력은 사랑을 위한 새로운 한걸음마저 내딛게 했으니, 이 모든 것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송스루 형식을 취하고 있어 스토리의 개연성은 다소 부족함이 느껴졌으나, 멜로디와 가사가 아름다워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던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히 녹여내며 그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순간 또한 인상적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나 역시 잠시나마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했다.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게 맡은 역할을 해냈지만 듀티율로 열연한 유연석의 모습이 단연코 최고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매력적인 음색과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킬과 하이드처럼 캐릭터가 변화함으로써 보여지는 모습의 차이가 두드러져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소심한 공무원 듀티율과 자신감 넘치는 뚜네뚜네의 대비가 명확해 만족스러웠다. 풍성한 재미를 선사하는 커튼콜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점도 작품의 묘미를 살리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만, 그저 아름답고 예쁜 동화로만 남는 것이 가능했을 뻔한 이야기가 결말로 인해 현실동화로 탈바꿈한 점이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에게 견해 차이를 불러 일으키는 것만은 사실이다. 단편으로 구성된 원작의 엔딩을 그대로 살려내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는데, 나는 그러한 점으로 말미암아 작가의 탁월한 통찰력을 공연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더 신선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동화가 될 수 없듯이, 무대 위의 듀티율과 뚜네뚜네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항상, 그리고 매번 좋은 순간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 마지막 장면이 더 진한 감동을 불어넣어줘서 인생의 진리 또한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현실 같은 판타지를 꿈꾸는 우리와 판타지 같은 현실을 사는 듀티율의 모습은 때때로 객석의 관객과 무대 위의 배우를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의미가 존재한다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그랬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넘버로 인해 환상의 세계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때때로 꿈꾸는 현실을 넘어선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였다. 정말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따뜻한 새해에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기에 다시 또 만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