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늘 고뇌를 전제로 한다. 대중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산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곤 한다.
비극적인 삶을 산 차이코프스키나 베토벤,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평생 안온한 삶을 산 바흐를 다룬 작품이 없는 것을 보더라도 대중들은 단지 아름다운 예술작품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삶의 고뇌와 고통이 승화된 작품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중 마슈칸 교수 역시 스티븐에게 비슷한 말을 전한다. 프랑스에 비해 오스트리아에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은 이유는 수세기동안 끊임없는 침략과 억압을 받아온 슬픈 역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연주를 하려면 삶의 기쁨 뿐 아니라 슬픔, 이 두 가지를 꼭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좋은 작품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일부로 불행한 경험을 찾아다닐 수도 없는 법.
스티븐에게 마슈칸의 조언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두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불협화음으로 시작한다.
극은 1986년 어느 봄날, 미국인 스티븐이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마슈칸 교수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며 시작한다.
4살때 연주를 시작해, 신동소리를 들으며 솔리스트로 활동했지만, 슬럼프로 연주를 그만둔지도 일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를 그만둘 수 없던 스티븐은 쉴러교수에게 사사받기 위해 오스트리아까지 날라오지만, 쉴러교수는 자신의 수업을 듣기전 마슈칸 교수에게 성악수업을 들을 것을 권한다.
피아니스트에게 뜬금없는 성악수업이라니? 당장 쉴러교수에게 달려가려는 스티븐에게 마슈칸은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악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수업.
하지만 노래는 마음마큼 잘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마슈칸의 반주는 자꾸 박자가 엇나가 노래를 낭치기 일쑤다. 박자를 지적하면 마슈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잘못을 떠넘긴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스티븐은 마슈칸의 수업이 하나부터 열가지 단 한가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지만, 이상하게 수업을 계속할 수록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연주에 자신을 맞추는 법을 알게된 것이다.
극은 스티븐의 두가지 변화를 기본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하나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와 공감이라고 하는 감정적 변화다. 특히 두번째 변화는 2막에서 두드러지는데. 유대인임을 숨기고 살아가던(사실은 자각조차 없던) 스티븐은 유태인들이 학살된 장소를 방문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과 잔혹한 학살의 장소가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된 것에 분개하며, 세상을 향해 자신이 유대인임을 소리친다.
키파를 쓰고 더 이상 독일어로는 노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스티븐. 그의 변화가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평소에도 반항아적인 기질이(혹은 중2병에 걸린) 다분했기에, 그런 치기어린 행동들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일종의 통과의례같은 과정이라고 할까?
극증 스티븐의 변화에도 마슈칸이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규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극은 그렇게 스티븐의 성장을 통해 인생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같은 희노애락의 연속이며, 그런 다양한 감정의 경험은 우리들의 삶을 더 깊이있고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슈칸을 통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도 유머를 잊지 않고, 말 그대로 삶을 버티게하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거기에 음악이 더해져 분위기의 완극을 조절한다. (음악극이라고 부르기에는 음악의 비중이 너무 작기는 하지만)
오릇히 두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공연이지만, 무대는 꽉 찬 느낌이다. 민족성 정체성, 2차 세계대전, 유태인 학살, 직업적 고뇌 등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갈등이 공존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유머스러운 장면도 많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2인극은 배우들의 호흡이 참 중요한데, 오랫만에 무대에 오르는 이창용배우의 스티븐과 관록있는 송영창 배우의 마슈칸은 잘 어울리는 페어다. (송영창 배우의 발음이 뭉게져 중간 중간 알아듣지 못하는 대사들이 많아 아쉬움이 들기는 해도)
무엇보다 음악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닿아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보는 내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공연정보]
공연명: 음악극 ‘올드위키드송’
원작: 존 마란스(Jon Marans)
연출: 김지호
음악감독: 서은지
공연기간: 2015년 9월 8일 ~ 11월 22일
공연장소: DCF대명문화공장2관 라이프웨이홀
출연진: 송영창, 김세동, 김재범, 박정복, 이창용, 조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