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끝줄. 다른사람은 나를 볼수 없으나 나는 다른 사람을 관찰할수있는 자리.
그 맨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가 친구 라파의 가정을 관찰하면서 쓴 글을 그의 문학선생님 헤르만이 읽는 형태의 극입니다.
전체적으로 클라우디오가 쓴 글을 헤르만이 읽으면서 그것을 재연하는 형태라 크게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클라우디오의 어머니는 클라오디오가 어렸을적 집을 나가고 클라우디오에게 무심한 아버지와 둘이 사는 외로운 소년이지요.
그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그곳에서 보이는 집들과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반인 라파의 집을 발견하게되고, 라파의 수학공부를 도와준다는 이유로 라파의 집에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작문시간에 자신이 관찰한 이야기를 숙제로 써내지요.
작문선생님 헤르만은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은 한두줄 써서 내는 작문숙제에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써간 클라우디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클라우디오에게 작가의 소질이 있다는것을 알고 헤르만은 그에게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빌려주며 그에게 글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 이건 도서실 책이 아니야. 밑줄긋지 말고 모서리 접지말고 펼친채 엎어놓지도마.. 이 대사에 엄청 웃었습니다..저도 책은 잘 안빌려주는데 빌려주게되면 빌려줄때 똑같은 말을 하거든요...ㅋ)
그러면서 헤르만과 그의 부인은 점차 클라우디오의 이야기에 끌립니다.
타인을 몰래 훔쳐보고 상상하는것.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 그것은 참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일입니다.
극도 클라우디오의 이야기로 끌어가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클라우디오의 상상인지 경계가 모호합니다.
가끔 같은 상황이 두세번 반복되어 나오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상황이 바뀌는것을 보면서, 이이야기가 오로지 객관적인 관찰만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글을쓰는 클라우디오의 상상이 첨가되었다는것을 알뿐이지요.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소년은 친구의 단란한 가정을 관찰하며 지나친 상상과 욕망을 드러냅니다.
단지 글을 쓰는 사람들만의 일은 아닐것입니다.
우리도 알게모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가끔 마주치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아니 모르는 타인에 대한 상상은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잊혀지니 오히려 지루한 대기시간에 흥미거리일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상상합니다.
클라우디오가 라파의 어머니를 놓고 상상한것같은 그런 무례한 상상도 있을것이고, 가볍게는 그사람은 아무 의미없이 한번 바라본것가지고 화가 나서 나를 바라봤다느니, 내가 마음에 안든다느니..
그리고 자신의 그 상상을 주위에 말을 하고 자신의 상상에 주위사람들이 동조해주기를 바랍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상상하고 마지 그것이 사실인것처럼 생각해버리기도하지요.
그리고 너무 쉽게 타인의 상상에 동조하고 함께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그 관찰과 상상이 자신에게 돌아오면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노합니다.
극의 마지막에 클라우디오는 헤르만과함케 통로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동일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서로 상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하다가
클라우디오가 헤르만에게 부인을 찾아갔다는 말을 하자 헤르만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요.
전체적인 극은 너무나 잔잔하게 반복적으로 흘러가서 중반이후에는 조금 쳐진다는 느낌도 있긴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로운극입니다.
소품의 위치를 바꾸기위해 몇번의 암전이 있는것외에는 암전없이 극을 진행하는데 무대 테두리쪽에 유리로 벽을 만들어 통로같은 느낌. 이야기속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는 느낌을 주는것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클라우디오역을 맡은 전박찬배우와 헤르만 역을 맡은 박윤희배우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좋다는것을 넘어서서 훌륭했어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보는 사람을 극에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넘쳐서 부자연스럽지도 않고 너무 편안해서 오히려 연극임이 보이지도 않고, 극에 집중할수있는 딱 적당한 카리스마요.
다시한번보고 싶은데 내년이라도 꼭 다시 올라왔으면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