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Philippine Patrons of the Arts, U.S.A 'The Most Beautiful Sound on Earth'
Philippine Madrigal Singers
음악감독 ‘안드레아 베네라시온’ 인터뷰
글 : 영국잡지 Choir & Organ의 Paul Cutts
스승보다 제자가 특출할 때 우리는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籃以靑於籃)' 이라는 한자 성어를 사용한다. 유럽의 까탈스러운 평론가들로부터 '유럽 수준을 넘어서는 합창'이란 격찬을 이끌어내는 필리핀 마드리갈 싱어즈. 이들을 두고 사용하기에 적절한 한자 성어다.
성악적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유럽의 음악 장르인 마드리갈이 본 고장에서 1만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번성하고 있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즈(Madz)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필리핀 마드리갈 싱어즈는 지난 35년간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해오고 있는데, 그들의 연주에 쏟아진 박수갈채는 엄청난 것이었다.
1969년부터 이들은 위트레히트(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슬로베니아, 미국 등 세계 각지와 고향인 마닐라에서 수많은 녹음을 해왔다. 또한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불가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개최하는 수많은 국제 합창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해왔다. 마드리갈 싱어즈는 유럽인들이 개최하
는 경연대회에서 계속적으로 유럽인들을 물리쳐왔으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이 되었던 1998년에는 이를 기념하여 리스본, 런던, 빈, 독일 등지에서 문화 대사로 초청을 받아 순회연주를 하기도 했다.
이 합창단이 이토록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된 데에는 1963년 미국에서의 음악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이 합창단을 설립한 안드레아 베네라시온(Andrea O. Veneracion) 교수의 영감 어린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에 인디애나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때 나는 오페라는 공부하고 있었죠. 마침 한 친구가 마드리갈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그 음악이 참 흥미를 끌더군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나도 거기에서 같이 노래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죠. 마드리갈 그룹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필리핀에 돌아가면, 새로운 마드리갈 합창단을 만들어야겠다고요."
베네라시온은 1963년에 귀국하여 필리핀 대학 음악과의 교수가 되었다. 당시 필리핀은 왕성한 음악 활동이 시작되던 때였다. 필리핀은 1521~1896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었고, 이후 1898년에 곧바로 혁명이 일어나지만 그 뒤를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50년간을 미국 지배하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한 고초를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되는데, 이때부터 많은 음악 과정이 생겨났고, 많은 음악학교가 설립되었다. 필리핀 작곡가 협회가 생겨난 것도 이 시기인 1955년 무렵이다. 하지만, 식민 시기의 영향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필리핀의 음악은 자국의 민요 외에 성가, 유럽의 고전음악, 그리고 재즈 같은 대중음악 등 4부류의 서로 다른 음악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서 유럽의 영향을 받고 자란 뒤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베네라시온은 자신의 음악 활동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기 시작했다. 베네라시온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훌륭한 마드리갈 작품들을 탐구해가기 위한 자유로운 형태의 성악 앙상블을 조직했다.
"내가 마즈를 시작하기 전, 그저 모여서 노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합창단들은 이미 다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합창단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전문가적인 합창단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일단 연주를 위해 모이면, 모든 음악 레퍼토리를 정말로 신중하게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항상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곡들로 만들곤 했습니다. 우리의 전문 분야인 마드리갈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안 성가에서부터 현대곡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것이었습니다."
마드리갈 작곡가인 몰리나 기본스 등의 작품을 탐구해보기로 했던 결정은 쉽게 실천될 수 있었다. 베네라시온이 대학도서관에서 완벽한 영국 마드리갈 전집을 발견해냈기 때문이었다.
" 마드리갈 전집은 필리핀 내에서 필리핀 대학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대출했던 적이 없었던 책이었습니다."
베네라시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영국 마드리갈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마드리갈과 독일 마드리갈을 공부해가기 시작해습니다. 1963년에 우리는 12~14명 정도의 인원으로 시작했죠. 단원들은 학생과 직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 연습에 두 시간 내지 두 시간 반정도 연습했습니다."
모든 것이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재정적인 어려움이 컸으며, 필요한 모든 비용은 베네라시온의 자비로 충당했다.
"우리는 악보를 구입할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복사를 해서 쓰곤 했습니다."
오늘날 이 합창단은 필리핀 문화센터로부터 정기적인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설립한 마즈 재단법인을 통하여 매해 보조 금액의 네 배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
"협력 후원사가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내가 은퇴하기 전에 마드리갈 싱어즈를 후원할 거대 후원사가 나타나서 이들의 모든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길 희망합니다. 머잖아 기금 모금을 위한 연주회를 하게 되면 그때 우리를 후원해줄 기업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가던 필리핀 마드리갈 싱어즈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69년 뉴욕에서 세계 대학 합창제가 열렸을 때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이 단체는 아시아의 바깥 세계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제2회 세계 대학 합창제에도 초청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 우리는 독일, 스페인, 칠레, 포르투갈 등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온 많은 다른 합창단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합창단은 아시아에서 온 유일한 합창단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도 그다지 많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에 합창단이 있고, 태국에 교회 합창단이 있지만, 이들이 하는 음악은 서양의 음악과는 너무도 다른 것입니다. 브루나이 같은 지역에도 합창단이 있지만, 이들은 아직 너무 어립니다."
이 합창단만의 독특함으로 인해, 마드리갈 싱어즈는 청중으로 하여금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보다 심각한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작곡가들에게 작곡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작곡가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줄 것을 의뢰합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이런 종류의 레퍼토리를 소화해낼 수 있는 합창단은 우리가 유일하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베네라시온은 마드리갈 싱어즈가 아시아만의 토착적인 음악 유산도 연주로 표현해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마드리갈만을 연주하진 않습니다. 우리 지역의 청중이 지루해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항상 팔레스트리나나 혹은 다른 종교음악같이 심각한 음악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민요 같은 곡으로 균형을 맞춥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연주의 마지막은 필리핀 음악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나라는 45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고유의 문화는 잘 보존해왔습니다. 산간 지역과 남부의 이슬람교 지역 등에서 특히 잘 보존이 되어 있죠. 남부 지역의 음악에는 징을 많이 사용하고, 북부 지역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악기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날의 현대 작곡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이러한 악기 소리를 많이 모방하고, 합창곡에서 징 소리를 모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우리의 현대 음악들은 특정한 음악적 고유문화를 표현하곤 합니다. 우리는 때론 옛날 스페인의 음악을 편곡하기도 하고, 민족적인 음악을 합창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대중음악을 앙코르 곡으로 부르기도 하지요.“
이러한 매우 광범위한 레퍼토리는 필요로 하는 모든 곡을 외워야만 하는 새로 들어온 단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베네라시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모든 곡을 외워서 연주하며, 옛날의 마드리갈 연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원을 그리고 앉아서 연주합니다. 우린 보통 한 해에 연주 가능한 프로그램을 4가지 정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프로그램은 18~22곡 정도입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외우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익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신입 단원이 있을 경우 연습시에 우리가 신입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해마다 보통 한 명 내지 두 명 정도가 새로 입단합니다. 우리는 대학 합창단이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만 단원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매우 열심히 하죠" 라고 베네라시온은 말한다.